▷ 우리 신약개발에 승부걸자
조선일보 [논단] 2000-12-23

요즘 제약업계에서는 오리지널과 카피 논쟁이 한창이다. 외국회사 ‘오리지널’ 제품은 연구개발비가 많이 들어갔기 때문에 정부에서 정한 보험약가가 비싸도 당연하고, ‘카피’는 저렴해도 폭리라는 것이다.

다국적 제약기업을 이루어보려고 노력하고 있는 제약업계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프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의약품에 있어서 카피라는 표현은 합당치가 않다.

이태원 시장에서 파는 카피, 예를 들어 피에르카르댕 가방은 똑같이 만들어 어느 것이 진짜인지 모르게 만든 모조품이다. 그러나 이것은 상표를 도용한 것일 뿐만 아니라 명백한 재산권 침해 행위가 된다. 이런 것을 우리는 보통 '카피’라고 하며, 오리지널 제품에 비해 품질이 조잡하고 싸구려라는 인식을 갖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의약품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제약회사는 모두 K.P(한국 정부가 정한 약전), U.S.P(미국 식품의약국이 정한 약전) 등 한국 규격과 세계 규격에 맞게 제품을 만들고 있다. 이 규격에 따라 약품을 만들어 사전 사후 검토를 받는다. 이 규격에 미달되는 약품의 경우 생산취소, 판매금지 같은 엄격한 규제를 받게 된다.

다시 말해 약품에 있어서는‘오리지널’이라고 주장하는 외국산 제품이나,‘카피’라고 하는 국내산 제품 모두 동일한 품질 가이드 라인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관리되고 있는 ‘규격품’인 것이다.

국산약 중 선진국이 인정하는 신약은 아직 없다. 우리의 제약업은 초기단계부터 외국의 원료를 들여와 외국기업의 상표가 붙은 외국제품을 선전해서 팔고 로열티를 주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 왔다. 이처럼 외국에서 원료, 기술, 상표를 들여온 오리지널로 팔면 쉽게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러나 오리지널의 판매이익은 외국의 개발사로 되돌아가게 된다. 특히 잘 팔리는 약품의 경우, 외국기업은 직접 새 법인을 만들어 스스로 팔기 시작했다. 그 결과 외국 다국적 제약기업은 크게 성장했고, 우리나라 제약업은 독자적인 제품개발이 뒤져 오늘날과 같이 다국적 기업에 종속적인 위치에 놓이게 됐다.

따라서 이 같은 상황에서 의약분업을 계기로 오리지널만 고집할 경우 한국 제약산업은 더이상 발전의 여지가 없음은 물론, 붕괴될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 자명하다. 약값 역시 약육강식이라는 정글의 법칙이 지배한다. 제약산업이 황무지인 아프리카의 약값이 캐나다나 유럽의 약값보다 비싼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도 국내 제약업계가 쓰러지면 약값은 터무니없이 올라가고 아프리카와 같은 꼴이 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진짜 우리의 오리지널 제품을 만들려면 많은 연구개발비가 든다. 하지만 우리나라 제약업계도 이젠 우리의 연구진이 원료를 개발하고 완제품을 생산하여 세계시장으로 수출하는 길을 택해야 한다.

우리 원료에 우리 브랜드(한국 상표)로 세계에 수출하고 생물학적 동등성 실험까지 끝낸 제품, 즉 진짜 오리지널 제품을 만들어야 할 시점에 온 것이다. 정부 또한 우리 제약업계가 진짜 오리지널 제품들을 많이 생산해낼 수 있도록 신약 연구개발을 위한 여건과 환경조성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제약산업의 어려움들을 앞장서 해소해주고, 국제시장 개척을 위한 마케팅과 국외 박람회 참가 등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만 많은 국산 신약들이 태어날 수 있고, 나아가 제약 수출이 자동차 몇 백만대 수출과 맞먹는 미래의 효자산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국민 의료복지 수준을 높이고 한국 의약산업을 발전시키는 길이다.
/ 강덕영 한국유나이티드제약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