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칼럼은 1월 9일자 서울경제신문에 게재된 한상섭 안전성평가연구소장의 글입니다.

국내 정밀화학산업은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고는 있지만 중간체 원제를 수입해 생산하고, 완제품 대부분이 국내서 소비되는 저부가가치형 산업구조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신물질 창출 및 고품위 포뮬레이션 등 신제품 개발에 필요한 핵심기술은 매우 취약한 형편이다. 전체적인 기술수준은 미국의 60% 정도다. 특히 안전성평가 기술은 매우 취약한 실정이다.

신약 개발과정을 보면 기초탐색 및 원천기술 연구과정과 전임상시험 연구과정 그리고 임상시험 과정으로 크게 분류하여 개발되고 있다.

통계적으로 신물질 탐색에서부터 신약이 탄생하기까지의 성공확률은 1만분의 1로 아주 낮고, 평균 10∼15년의 개발기간과 1억∼6억 달러의 개발비용이 든다. 그러나 성공할 경우 매출액 대비 20∼30% 이상의 이윤을 창출하는 등 그 부가가치는 매우 막대하다. 세계 100대 의약품 중 1개 품목의 연평균 매출액은 8억~10억 달러, 순이익은 1억6,000만~3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평균적으로 신규화합물 1만개당 1개의 신물질이 창출되며, 신물질 개발기간ㆍ비용의 약 40%가 안전성평가에 소요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내외적으로 안전성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있어 관련기술 확보가 제품 개발의 핵심요소가 되고 있다.

안전성평가란 새로이 개발되거나 현재 사용중인 정밀화학ㆍ생물산업 제품이 인체와 환경에 미치는 각종 독성을 실험동물을 이용해 검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밀화학ㆍ생물산업 제품의 개발과정에 필수요소다.

국내의 안전성평가 관련기관은 규제기준 제정, 인ㆍ허가용 제출자료 검토를 주업무로 하는 국공립 연구기관과 국제 GLP 가이드라인에 의해 외부 수탁시험을 수행하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화학연구원 안전성평가연구센터, 자사 생산품에 대한 간단한 독성평가를 수행하는 민간기업들이 있다. 민간기업의 경우 LG와 유한양행ㆍ동아제약 등에서 국내 GLP체제를 구축했으나 자체 독성시험 위주의 간단한 독성시험을 수행하는데 그치고 있다. 최근 2∼3개 벤처기업에서 관심을 두고 있으나 막대한 투자비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안전성평가는 정밀화학ㆍ생물산업의 산업화 기반을 구축을 하는데 있어 필수적이므로 국가적 차원에서 적극 지원이 필요하다. 국내 생물산업 시장규모는 1996년 약 6,000억원에서 2000년 3조2,000억원으로 크게 성장했으나, 신물질ㆍ신제품 개발에 있어 핵심요소인 안전성평가기관 부족과 기술수준이 낙후돼 관련산업 발전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외국의 안전성평가기관은 미국 50여개, 일본 30여개, 유럽연합(EU) 20여개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화학연구원 안전성평가연구센터와 몇개 민간기업이 있는 정도여서 급증하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인력ㆍ시설ㆍ기술면에서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떨어져 있는 것도 문제다. 그래서 외국기관에 평가를 의뢰하는 경우가 다수 발생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는 각종 화학물질의 안전성평가에 대한 제반 시험과정 및 결과에 대한 신뢰성 확보를 위해 GLP라는 우수실험실 운영규정과 준수실태에 대한 국제사찰조항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는 OECD 가입국으로서 이 규정의 준수를 위해 국제적인 GLP 수준의 안전성평가기관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산업자원부에서는 OECD GLP 수준 확보를 위해 1997년부터 약 5,200평의 시설과 400억원의 규모로 화학연구원 안전성연구센터를 확충, 발전시키는 방안을 추진해 2002년 3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기획예산처와 각 부처에서는 화학연구원 안전성연구센터를 2002년 1월 1일부로 안전성평가연구소로 분리, 독립시키기로 결정했다. OECD와의 합의사항 이행을 위해 국제수준의 GLP체계 조기 구축이 필수적으로 요구되고, 국제공인 GLP 시험기관으로서의 신뢰성 확보를 위한 전문평가체제를 구축해야 하며, 국내외 환경변화 및 경쟁심화에 조속한 대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안전성평가연구소가 분리 독립체제로 운영됨에 따라 2000년 6월에 OECD로부터 지적된 기구와 운영체제의 분리 문제가 해소돼 2002년에는 OECD GLP체제 인증을 획득해 선진국 수준의 GLP 체계를 가동하고,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국제공인 획득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선진국 수준의 GLP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시설과 인력ㆍ장비 등 인프라가 갖춰져야 한다. 특히 전문인력 양성 등 과감한 정부투자가 절실히 필요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오는 2003년 1월부터 완전한 GLP체제 가동을 위한 법규를 이미 제정해 발표했다. 따라서 국제 수준의 체제에 도달하기 위한 투자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민간기업에서 투자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므로 국가가 국내 정밀화학ㆍ생물산업의 공통애로기술인 안전성평가 인프라 확충에 투자함으로써 국내 산업체의 기술개발을 촉진하고, 선진국 기술예속에서 탈피해야 할 것이다.

국가가 핵심 인프라 구축을 위해 단기간 과감하게 집중투자한 후, 점차 출연예산을 줄여 자체수입에 의한 수탁전문용역기관으로 전환하면 투자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