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적 관점에서 제약산업은 미래 국가경제를 주도할 신성장동력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전 세계적인 저 성장 기조에도 생명을 다루는 제약산업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유지하고 있어서다. 세계 의약품시장은 2005년 이후 연평균 6%대의 안정적 성장세를 유지해 반도체 시장의 3배에 달하는 1200조원 규모를 형성하고 있다. 향후 전망도 밝다. 세계적으로 고령화가 가속화되는 등 사회환경 변화로 인해 의약품 수요는 지속적으로 늘어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4~7%의 성장률이 예상되고 있다.
특히 제약산업의 꽃으로 불리는 ‘신약의 마법’같은 경제적 가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87년에 설립된 벤처기업 길리어드는 계속되는 적자에도 불구하고 신약개발에 매진하면서 신종플루때 확실히 존재감을 각인시켰던 타미플루와 C형 간염치료제 하보니의 개발에 성공하면서 설립 30년만에 세계 4위의 글로벌제약기업으로 우뚝 섰다. 하보니의 지난해 글로벌 매출액은 20조원으로 우리나라의 전체 의약품 시장규모(19조원)를 뛰어넘는다.
한국 제약기업은 신약 개발에 뛰어든 지 30년에 불과하지만 끊임없는 투자와 지속적인 연구개발에 힘입어 27개의 국내개발 신약을 탄생시켰다. 2015년 기준 제약기업들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 비중은 6.8%로, 전 산업 평균(3.0%)의 두배를 넘는다. 연구개발을 주도하는 혁신형제약기업은 8.5%에 달한다. 보건안보의 척도인 의약품 자급도는 80%에 육박한다. 완제의약품 수출은 최근 10년간 평균 15%대의 증가율을 보일 정도로 고성장하고 있다. 일자리도 타 산업군에서 감축이 한창일 때 제약산업군은 꾸준히 인력채용을 늘리며 고용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특히 석박사 등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 내면서 고급인력의 해외유출을 막는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양질의 의약품으로 국민건강을 지켜내고 동시에 안정적인 성장성과 고부가가치, 여기에 탁월한 일자리창출 역량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산업. 이는 제약산업만의 고유한 사회경제적 가치다. 하지만 간과해선 안될 게 있다. 신약개발의 특성이다. 글로벌 신약은 성공할 경우 엄청난 보상을 가져다 주지만 위험성도 크다. 신약개발은 10년 이상의 시간과 1조원 이상의 막대한 자본을 지불해야 하는 장기 프로젝트다. 최종 성공률도 0.01%에 불과하다. 10여년의 시간과 1조여원의 자금은 현재로선 국내 제약기업들이 감당할 수준이 아니다. 연 매출 1조원을 넘는 국내 제약기업은 3개에 불과하다. 반면 세계적 제약기업들은 이의 10배에 달하는 10조원 안팎의 자금을 매해 연구개발(R&D)에 투입한다. 기업 규모로만 놓고 보면 아직 한국의 제약산업계는 햇병아리 단계인 셈이다. 이로 인해 좋은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하더라도 완제품 단계까지 지속하지 못하고 임상 초기에 글로벌 제약사에 기술수출한다. 그 만큼 부가가치는 줄어든다. 매출 대비 수출 비중도 15%에 불과하다. 적어도 수출 비중이 50%를 넘어서고 연 매출이 최소 2조 5000억원 이상은 돼야 글로벌 제약기업의 반열에 오른다. 나아가 글로벌신약 개발에 성공하면 단박에 세계 상위 제약기업에 진입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선 국가차원의 지원이 절실하다.
제약산업은 생명에 직결되는 의약품의 특성상 사회보험이라는 공보험 체계안에 들어가 있다. 그러다보니 인허가는 엄격하고 의약품의 가격을 보험에서 결정하는 등 규제가 강하다. 특히 현 약가제도는 재정절감에 초점이 맞춰진데다 예측이 어려워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국내 제약기업의 연구개발 활동을 위축시킬 우려가 크다.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사회보장’과 경제발전에 기여하는 ‘산업육성’, 포기할 수 없는 두 가치의 합리적 조화가 국민건강을 공고히하는 동시에 한국이 글로벌 제약강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바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