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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제약바이오협회 원희목 회장 |
AI와 빅데이터 등 ICT와 바이오 기술의 융합은 신약개발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킬 것으로 평가된다. 신약개발 과정을 보면 통상 5000에서 1만개에 달하는 후보물질을 탐색하고, 독성 여부와 특허관계를 확인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임상시험에 앞서 '후보물질 탐색 및 도출과 전임상' 단계에만 5~6년이 걸리는데, AI를 도입하면 10분의 1 정도로 단축 시킬 수 있다.
사람에게 약물을 투여하는 임상단계에서도 AI는 매력적이다. 기존에는 대상자 모집 후 적합여부 검증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지만 보건의료 빅데이터가 입력된 AI를 활용하면 해당 치료제에 가장 많은 효과를 볼 수 있는 환자군을 추려 임상시험 실패율을 낮출 수 있다. AI 도입의 당위성에 방점이 찍히는 이유다. 주요 신약 선진국에서도 이런 추세가 두드러지고 있으며, 일부 국가에서는 AI를 기반으로 한 신약개발 프로젝트를 국책과제로 추진 중이다.
미국 최대 제약업체 화이자는 면역과 종양학 부문 신약개발을 위해 IBM사의 AI '왓슨'을 활용하고 있다. 얀센도 지난해 영국 AI 기업 베네볼런트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 AI를 적용한 임상 단계 후보물질 평가와 난치성 질환치료제 개발에 나서고 있다. 이스라엘 테바는 호흡기, 중추신경계ㆍ만성질환 부작용 사례를 분석하고 추가 적응증(의약품 사용이 허가된 질병)을 확보하기 위해 IBM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국내에서도 이런 노력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한미약품ㆍ대웅제약 등 주요 제약업체들이 사내 별도의 AI팀을 설치해 연구개발에 뛰어든 바 있다. 바이오벤처 크리스탈지노믹스와 AI 전문기업 스탠다임은 AI 딥러닝 기술을 이용해 항암 약물을 도출하는 데 성공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동물실험과 임상시험을 준비 중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도 기업들의 신약개발을 돕기 위해 지난 7월 신약개발인공지능센터를 설립키로 결정했다. AI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팀도 꾸렸다. 이 과정에서 제약업체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해 신규 후보물질 발굴, 전임상ㆍ임상 결과 예측, 부작용 이슈 해결, 국가별 임상ㆍ허가 전략 수립 등 수요를 파악했다. 협회는 이 같은 다양한 사전 준비작업을 거쳐 2018년 센터를 정식 가동할 예정이다.
산업계의 이같은 노력이 결실을 맺기 위해선 정부 지원이 필수적이다. 10년간 미국은 '브레인 이니셔티브'에 30억달러(약 3조6000억원), 유럽은 '휴먼 브레인'에 10억유로(약 1조3000억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특히 일본은 다케다제약과 NEC 등 50여개 제약ㆍIT 기업들과 이화학연구소ㆍ교토대 등 산ㆍ학ㆍ연이 뭉쳐 신약개발을 위한 AI 공동 개발에 착수했다. 일본 정부는 자국 제약업체의 역량 강화를 위해 올해 예산으로 25억엔(약 270억원)을 책정했으며, 최종적으로 100억엔(약 1030억원)이 투자될 전망이다.
조사ㆍ컨설팅 기관인 프로스트앤설리반에 따르면 의료 분야의 AI 시장 수익 규모는 2014년 약 7000억원에서 2021년 약 748조원으로 폭발적 성장이 예상된다. 한국이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고 주도권을 잡기 위해선 민관의 유기적 협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산업계의 노력과 정부의 전폭적 지원이 전제될 때 한국은 제약바이오 강국으로 우뚝서게 될 것이다.
원희목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
문소정 기자 moonsj@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