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원일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 직무대행] 제약산업계의 부단한 연구개발과 과학기술 발전으로 새로운 기전의 신약이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치료제가 마땅치 않은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신약은 커다란 희망이 되고 있다. 문제는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들 신약의 가격이 고가라는 점이다. 최근 출시된 두경부암 치료제의 경우 1년 약값이 9600만원에 달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았기 때문에 쓰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건강보험을 적용받지 못해 약값 전부를 환자가 부담해야 해 사실상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보건당국은 환자들의 건강권을 위해 이 약에 건강보험 적용을 허용해야 할까. 아니면 건강보험의 지속가능한 운용을 위해 거부해야 할까. 한정된 재원에서 비롯된 가치의 충돌이자 선택의 함정이다. 최선의 대안은 재정 지출을 줄이면서 접근성을 높이는 길이다.
이 같은 측면에서 환자들의 의약품 접근성을 충족하는 동시에 재정을 절감할 수 있는 위험분담계약제(Risk Sharing Agreement, 이하 위험분담제)의 확대를 제안한다. 위험분담제는 약물의 안전성은 입증됐지만 효능, 비용효과성이 불확실한 약제를 일단 건강보험에 적용시키되 나중에 효능이나 비용효과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약제 판매금액의 일부를 환급토록 하는 제도다. 보건당국과 제약사가 일정 부분 재정적 위험을 분담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대체치료법이 없는 고가 항암제나 희귀난치질환 치료제가 대상이다.
학계 조사에 따르면 이같은 위험분담제는 고가 약제의 건보 적용에 소요되는 시간을 기존 4년 3개월에서 2년 4개월로 단축시키고, 환자 본인부담금을 약 2800억원 절감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등 선진국가들은 신약에 대한 환자들의 의약품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위험분담제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자국민에게 비용효과적인 가격으로 의약품을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위험부담제가 두 가지 걸림돌 때문에 확대하지 못하고 있다. 하나는 최초 선정한 선발 약제에만 제도를 적용한다는 점이다. 원칙상 대체 치료제가 없는 경우에 한정해 제도를 적용하다 보니 후발로 나온 대체 약제는 이미 선발 약제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시장에 진입하기 때문에 제도를 적용받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선발 약제는 후발 약제가 시장에 등장해도 당초 계약기간에 따라 4년간 사실상 독점권이 부여된다. 후발 약제라는 이유만으로 제도권 진입이 원천적으로 차단되는 맹점이 존재하는 것. 이에 따라 후발 약제도 위험분담제를 적용해 치료제 선택의 폭을 넓히고 제품간 경쟁을 통해 약가를 인하시키는 경쟁체제의 도입이 필요하다.
또 하나는 제도 신뢰에 관한 문제다. 위험분담제는 상한금액(건강보험의 최대 지불가격)과 정부와의 실제 협상가격의 차액을 제조업체가 환급하는 것으로 이중가격제 형태를 취한다. 이는 약가의 불투명성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가격 결정을 위한 과정을 상세하게 공개해 의구심을 해결하면 될 것이다. 건강에 대한 수요만큼 이를 건강보험 재정에 관한 걱정과 관심도 날로 높아지고 있다. 신약 접근성 향상에 따른 환자 치료기회 확대와 재정절감을 통한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위험분담제를 확대하고, 이를 통한 제도의 발전방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