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장쑤성, 저장성 등 동부지역에 자라는 모소대나무가 있다. 모소는 씨를 뿌린 이후 몇 년 동안 싹을 틔우지 않는다. 이 지역에 새로 이사 온 사람들은 몇 년째 맨땅에 농부들이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미련하다며 비웃곤 한다. 농부들이 끈기와 인내를 갖고 4년 동안 정성껏 키우면 3㎝ 정도의 죽순이 겨우 나온다. 그 이후에도 농부들은 여전히 헌신적으로 보살핀다.

씨를 뿌린 지 5년이 되는 순간부터 모소는 하루에 30㎝ 이상씩 쑥쑥 큰다. 6주가 지나면 거의 15m까지 자란다. 마침내 아무것도 없었던 것 같은 땅은 울창한 대나무 숲으로 변한다.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따로 없다.

모소는 성장을 위해 뿌리에 양분을 차곡차곡 모으고 싹이 돋아나면 모아둔 양분으로 폭풍 성장을 한다. 농부들은 5년이라는 인고의 시간을 고스란히 보상받는다. 외부 사람들도 그제야 농부들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모소 이야기는 어떤 일이든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충분한 준비 기간이 필요하며 당장 눈앞의 결과물이나 이익에 급급해 기본과 원칙을 저버리면 안된다는 교훈을 준다.

최근 국내 제약사들을 보면 모소대나무를 보는 듯하다. 자체 개발한 신약 기술을 글로벌 제약사에 천문학적인 금액에 판매하고 완제의약품을 유럽, 미국, 동남아시아, 중남미로 수출하는 등 성과를 내고 있다. 그동안 산업계, 학계, 정부가 국내 제약 산업의 발전을 위해 열정적인 자세로 끊임없이 노력하며 잠재력을 키운 결과다.

국내 제약사들은 제네릭의약품을 생산하면서 의약품 제조·품질관리 기술을 익혔고, 의약품 임상·허가 관련 제도를 정비하는 동시에 우수한 임상 인프라스트럭처도 구축했다.

또한 의약품 신뢰성의 척도가 되는 허가 기술·평가 수준도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높아졌다. 아울러 미국 유럽 등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통해 의약품의 지식재산권 관리 체계를 확립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국내 제약 산업은 비로소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막 틔운 싹이 모소대나무처럼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는 모소를 재배하는 농부의 마음으로 싹을 틔운 국내 제약 산업이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더욱더 최선을 다할 것이다.

정부는 2016년 한 해를 기업 현장에서 불만을 없애고 단속과 처벌의 규제 기관이 아니라 도움과 만족을 주는 서비스 기관으로 거듭나는 원년으로 삼고자 한다. 특히 국내 제약사들이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고 어려운 규제는 지원하며 필요한 규제는 만들 계획이다.

이를 위해 부처 간 협력·협업을 통해 예측 가능하고 신속하게 제품화가 진행될 수 있도록 원스톱 허가 심사 체계를 구축할 예정이다. 또한 제품화 가능성이 있는 신기술 의약품에 대한 새로운 평가 기술을 개발해 우수한 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다.

국내 제약 업체가 유럽에 원료의약품 수출 시 제출해야 할 서류를 면제받을 수 있도록 화이트리스트 등재를 추진하고, 수출국의 규제 현황 및 시장 수요에 맞는 전략적 수출 지원 대책을 수립해 국내 제약사들이 해외에 진출하는 데 발판을 마련할 계획이다. 아울러 해외 최신 정보와 규제 동향을 서로 공유하고 한눈에 파악 할 수 있는 의약품 플랫폼을 확충할 계획이다. 이 밖에도 국제회의나 워크숍 등을 통해 우리나라 기준이 국제표준이 되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국내 제약 산업이 모소대나무처럼 폭풍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산·학·연 모두 기본과 원칙을 지키는 동시에 서로가 조화를 이루는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산업계와 학계는 연구개발에 아낌없이 투자해 안전성이 확보된 우수한 의약품을 개발하는 등 자체 역량을 키우고, 정부는 기술을 지원하고 필요한 제도를 마련해 업계가 의약품 개발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결국 각자 맡은 위치에서 기본과 원칙을 지켜 노력하면 손에 잡힐 것 같지 않았던 목표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국내 제약 산업이 울창한 모소대나무 숲을 이룰 날이 머지않았다.

[김승희 식품의약품안전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