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국산의약품 불신 조장하는 미묘한 움직임은 또 어쩔건가
억울한가? 그런데 사실이다. 대한민국에서 제약산업은 징징대거나 투정부리는 산업으로 비쳐져 왔다. '세제 혜택을 더 달라' '약가를 깎지 말아달라' 등 어린아이 모양 뭔가 조르며, 걱정하는 모습이 그렇다. 제약산업이 대표적 규제 산업이다 보니 기업들은 새로운 정책이나 제도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출렁일 수 밖에 없는 게 진실이다. 그런데 현상만 놓고 보면 영락없이 떼 쓰는 아이의 꼴이다. 반면 "제약산업은 인류의 질병 예방과 치료를 담당하며 복지에 미치는 영향 또한 절대적이라는 점에서 국민산업"이라는 원희목 제약바이오협회장의 주장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제약산업의 긍정적 정체성을 명쾌하게 설명해 주고 있는데, 이 옳은 외침의 공명은 미약하기만 하다.
2017년 국내 제약산업은 위기다.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가 아니다. CJ그룹이 자회사 CJ헬스케어를 품에 안은지 34년 만에 매각의 수순을 밟는 것은 국내 제약산업의 고단함을 대변하는 상징적 시그널이다. 매각 움직임의 배경에 관해 다양한 해석이 나오지만 '사업 대상으로써 제약기업은 매력이 없다'게 중론이다. 말이 좋아 고부가가치 사업이지, 투자 해보니 수익은 보잘 것 없는데 비해 불법 리베이트 이슈 등 체면 구길 위험성은 상존한다. 돈은 많이 들고, 기간은 오래 걸리며, 그래서 나온 신약의 상업적 성공도 보장하지 못하는 게 오늘 날 제약사업이다. 미래를 살아가려면 신약개발을 해야하지만 그렇게 하려니 불투명하고, 캐시카우로 제네릭 사업을 요란하게 벌리자니 리스크가 적지 않다. 대기업 CJ의 눈에 컨디션이나 헛개수에 견줘 제약사업은 답이 없었을지 모른다. 사업의 원초적 목표는 누가 뭐래도 이윤추구이니 말이다.
CJ 헬스케어 매각 움직임에 앞서 한화그룹 드림파마, 아모레퍼시픽그룹 태평양제약, 롯데그룹 롯데제약 모두 의욕적으로 제약산업에 진입했다가 초라하게 사업을 접었다. 판도를 갈아 엎을 것처럼 떠들석 했던 이들의 제약산업 진입과 좌절이 일관되게 말하고 있는 것은 제약사업이 예상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점이다. 물론 대기업들이 사업에서 모두 물러서는 것은 아니다. 삼성은 타깃을 좁혀 '바이오베터와 바이오시밀러'에 진출했고, SK케미칼과 코오롱그룹도 사업을 이어가며 백신과 유전자치료제 분야에서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국내 최초 FDA 신약 팩티브 개발 등 어느 대기업보다 신약 연구개발(R&D)에 가치를 두고 몰두했던 LG그룹도 LG생명과학으로 분사했다, LG화학에 편입하는 등 변화를 겪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심어놓은 R&D 자산은 민들레 홀씨처럼 대한민국 바이오 바이벤처로 싹을 티우고 있다. 오랜동안 공들인 R&D의 후광일 것이다. LG에게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대기업 고개 절래절래 흔드는 제약사업
근래 국산 의약품 불신 풍조, 혁신의 꽃 피우는데 장애물
CJ 등 제약산업에서 후퇴한 대기업 사례가 돈 안되는 제약산업의 면모를 보여줬다면, 최근 고개를 들고 있는 미묘한 현상들은 기존 제약기업들의 행보에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식약처는 성분에 대해 안전성과 유효성을 보지만, 복지부는 (오리지널과 제네릭 간) 개별적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제네릭) 비복용자가 약을 (제네릭으로) 바꾸면 동일성분이라도 다르게 발현될 수 있다는 점을..." 허가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이 말, 누가 했을까? 이 약을 복용하는 환자의 주장일까? 놀랍게도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10월 31일 종합국정감사 현장에서 환자들의 주장처럼 말했다. 아주 오래 정립된 과학적 결론을 어정쩡한 타협의 언어로 뒤 흔들어 버렸다. 장관이 국산 의약품 불신을 야기하는 선봉에 선 것 아닌가. 대체제가 있어도 '어쨌든 오리지널'만 환자들이 요구할 수 있도록 장관이 길을 터준 셈이다.
"제네릭으로 먹고산다" "잘 나갈 때 신약개발 안하고 뭐했나" 등등 국내 제약산업 혹은 기업들에겐 이처럼 엄중한 비판이 늘 따라 붙는다. 혁신이 곧 신약개발인 제약기업들이 좀더 일찍 도전과 모험을 에너지 삼아 R&D를 하지 못한 것은 뼈아픈 사실이다. 그러나 신약개발의 조건엔 사회적 인프라도 포함되고 2000년 이전 맨바닥이었다는 점도 복기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열악한 상황에서 2015년 한미약품이 조단위 기술수출을 한 것을 필두로 불붙기 시작한 제약산업을 언제까지 과거의 시각으로 두들겨 팰 수 만은 없다. 대기업들은 제약사업에서 손을 떼지만, 전통의 기업들은 제네릭과 개량신약을 만들어 투자금을 조성, 어떻게하든 혁신으로 나가고 있다. 다들 혁신 신약에 대한 근원적 그리움, 혹은 꿈이 있기 때문이다. 회사채 900억원 발행해 R&D에 쏟아붓는 기업도 있다. 대기업 눈으로보자면 '미친 짓'일 뿐인데, 제약기업들은 그렇게 하고 있다.
정부가 진정 제약바이오산업을 국가 성장산업으로 육성하려 한다면 포용적이면서 정밀한 정책으로 기업가와 기업들의 R&D 욕망을 충동질 시켜줘야 한다. 'R&D 하면 돈이 된다'는 믿음을 확립해 줘야 한다. 이 믿음, 지금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 제네릭이든, 개량신약이든, 오랫만의 국산 혁신신약이든 허가는 나는데, 천대 받는 현상이 감지된다. '오리지널과 제네릭은 다르다'고 말하며 오리지널만 외치는 환자에게서 거부당하고, 이에 출렁거리는 정책과 장관의 말로부터 외면 당한다. 이래선 100년이 지나도 다국적 기업의 그늘을 벗어나기 힘들다. 아니 그늘은 더 깊어질지 모른다.
요즘 한껏 기세가 오른 바이오텍들의 기술이 외국에 팔려나가는 것은 박수를 칠 일이지만, 이러한 기술들이 국내 전통의 기업들과 협력해 더 큰 물건으로 개발돼 세계 시장의 블록버스터가 되는 것도 중요한 글로벌 진출의 트랙이다. 바이오텍을 북돋우면서 기존 기업들과 콜라보레이션을 유도하기 위한 정책은 그래서 필요하다. 그런데 제약산업 현장은 벌써부터 '문재인케어'에서 약가인하를 걱정하고 있다. 이런 토양에선 혁신신약의 꽃을 피울 수 없다. 2017년 정부와 공무원들은 과연 어떤 역할을 해야할까. 그대들에게 공을 던진다.
억울한가? 그런데 사실이다. 대한민국에서 제약산업은 징징대거나 투정부리는 산업으로 비쳐져 왔다. '세제 혜택을 더 달라' '약가를 깎지 말아달라' 등 어린아이 모양 뭔가 조르며, 걱정하는 모습이 그렇다. 제약산업이 대표적 규제 산업이다 보니 기업들은 새로운 정책이나 제도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출렁일 수 밖에 없는 게 진실이다. 그런데 현상만 놓고 보면 영락없이 떼 쓰는 아이의 꼴이다. 반면 "제약산업은 인류의 질병 예방과 치료를 담당하며 복지에 미치는 영향 또한 절대적이라는 점에서 국민산업"이라는 원희목 제약바이오협회장의 주장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제약산업의 긍정적 정체성을 명쾌하게 설명해 주고 있는데, 이 옳은 외침의 공명은 미약하기만 하다.
2017년 국내 제약산업은 위기다.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가 아니다. CJ그룹이 자회사 CJ헬스케어를 품에 안은지 34년 만에 매각의 수순을 밟는 것은 국내 제약산업의 고단함을 대변하는 상징적 시그널이다. 매각 움직임의 배경에 관해 다양한 해석이 나오지만 '사업 대상으로써 제약기업은 매력이 없다'게 중론이다. 말이 좋아 고부가가치 사업이지, 투자 해보니 수익은 보잘 것 없는데 비해 불법 리베이트 이슈 등 체면 구길 위험성은 상존한다. 돈은 많이 들고, 기간은 오래 걸리며, 그래서 나온 신약의 상업적 성공도 보장하지 못하는 게 오늘 날 제약사업이다. 미래를 살아가려면 신약개발을 해야하지만 그렇게 하려니 불투명하고, 캐시카우로 제네릭 사업을 요란하게 벌리자니 리스크가 적지 않다. 대기업 CJ의 눈에 컨디션이나 헛개수에 견줘 제약사업은 답이 없었을지 모른다. 사업의 원초적 목표는 누가 뭐래도 이윤추구이니 말이다.
CJ 헬스케어 매각 움직임에 앞서 한화그룹 드림파마, 아모레퍼시픽그룹 태평양제약, 롯데그룹 롯데제약 모두 의욕적으로 제약산업에 진입했다가 초라하게 사업을 접었다. 판도를 갈아 엎을 것처럼 떠들석 했던 이들의 제약산업 진입과 좌절이 일관되게 말하고 있는 것은 제약사업이 예상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점이다. 물론 대기업들이 사업에서 모두 물러서는 것은 아니다. 삼성은 타깃을 좁혀 '바이오베터와 바이오시밀러'에 진출했고, SK케미칼과 코오롱그룹도 사업을 이어가며 백신과 유전자치료제 분야에서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국내 최초 FDA 신약 팩티브 개발 등 어느 대기업보다 신약 연구개발(R&D)에 가치를 두고 몰두했던 LG그룹도 LG생명과학으로 분사했다, LG화학에 편입하는 등 변화를 겪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심어놓은 R&D 자산은 민들레 홀씨처럼 대한민국 바이오 바이벤처로 싹을 티우고 있다. 오랜동안 공들인 R&D의 후광일 것이다. LG에게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대기업 고개 절래절래 흔드는 제약사업
근래 국산 의약품 불신 풍조, 혁신의 꽃 피우는데 장애물
CJ 등 제약산업에서 후퇴한 대기업 사례가 돈 안되는 제약산업의 면모를 보여줬다면, 최근 고개를 들고 있는 미묘한 현상들은 기존 제약기업들의 행보에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식약처는 성분에 대해 안전성과 유효성을 보지만, 복지부는 (오리지널과 제네릭 간) 개별적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제네릭) 비복용자가 약을 (제네릭으로) 바꾸면 동일성분이라도 다르게 발현될 수 있다는 점을..." 허가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이 말, 누가 했을까? 이 약을 복용하는 환자의 주장일까? 놀랍게도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10월 31일 종합국정감사 현장에서 환자들의 주장처럼 말했다. 아주 오래 정립된 과학적 결론을 어정쩡한 타협의 언어로 뒤 흔들어 버렸다. 장관이 국산 의약품 불신을 야기하는 선봉에 선 것 아닌가. 대체제가 있어도 '어쨌든 오리지널'만 환자들이 요구할 수 있도록 장관이 길을 터준 셈이다.
"제네릭으로 먹고산다" "잘 나갈 때 신약개발 안하고 뭐했나" 등등 국내 제약산업 혹은 기업들에겐 이처럼 엄중한 비판이 늘 따라 붙는다. 혁신이 곧 신약개발인 제약기업들이 좀더 일찍 도전과 모험을 에너지 삼아 R&D를 하지 못한 것은 뼈아픈 사실이다. 그러나 신약개발의 조건엔 사회적 인프라도 포함되고 2000년 이전 맨바닥이었다는 점도 복기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열악한 상황에서 2015년 한미약품이 조단위 기술수출을 한 것을 필두로 불붙기 시작한 제약산업을 언제까지 과거의 시각으로 두들겨 팰 수 만은 없다. 대기업들은 제약사업에서 손을 떼지만, 전통의 기업들은 제네릭과 개량신약을 만들어 투자금을 조성, 어떻게하든 혁신으로 나가고 있다. 다들 혁신 신약에 대한 근원적 그리움, 혹은 꿈이 있기 때문이다. 회사채 900억원 발행해 R&D에 쏟아붓는 기업도 있다. 대기업 눈으로보자면 '미친 짓'일 뿐인데, 제약기업들은 그렇게 하고 있다.
정부가 진정 제약바이오산업을 국가 성장산업으로 육성하려 한다면 포용적이면서 정밀한 정책으로 기업가와 기업들의 R&D 욕망을 충동질 시켜줘야 한다. 'R&D 하면 돈이 된다'는 믿음을 확립해 줘야 한다. 이 믿음, 지금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 제네릭이든, 개량신약이든, 오랫만의 국산 혁신신약이든 허가는 나는데, 천대 받는 현상이 감지된다. '오리지널과 제네릭은 다르다'고 말하며 오리지널만 외치는 환자에게서 거부당하고, 이에 출렁거리는 정책과 장관의 말로부터 외면 당한다. 이래선 100년이 지나도 다국적 기업의 그늘을 벗어나기 힘들다. 아니 그늘은 더 깊어질지 모른다.
요즘 한껏 기세가 오른 바이오텍들의 기술이 외국에 팔려나가는 것은 박수를 칠 일이지만, 이러한 기술들이 국내 전통의 기업들과 협력해 더 큰 물건으로 개발돼 세계 시장의 블록버스터가 되는 것도 중요한 글로벌 진출의 트랙이다. 바이오텍을 북돋우면서 기존 기업들과 콜라보레이션을 유도하기 위한 정책은 그래서 필요하다. 그런데 제약산업 현장은 벌써부터 '문재인케어'에서 약가인하를 걱정하고 있다. 이런 토양에선 혁신신약의 꽃을 피울 수 없다. 2017년 정부와 공무원들은 과연 어떤 역할을 해야할까. 그대들에게 공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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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연 기자 (kycho@dailyphar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