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효없는 약은 없다”

얼마전 주요일간지들이 머리기사로 국내약 50%가 약효가 없다는 보도를 했다. 좋은 약을 만들기 위해 평생을 바쳐온 필자로선 충격적이고 믿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기사는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실시한 약효 동등성 실험 관련 자료를 토대로 작성된 것이었다. 약효 동등성 실험은 의약분업을 앞두고 처방전을 가진 환자가 약국에 와서 조제를 요구할 때 그 약국에 처방된 약이 없어 부득이 성분과 함량이 같은 약을 조제할 때 대체조제를 할 수 있는 의약품을 지정하기 위해 식약청이 실시한 것이다.

이에따라 식약청이 약을 생산하고 있는 제약업체에 약효 동등성 시험자료 제출을 요구한 결과 시험대상 4649품중 절반 가량인 2442품목만이 자료를 제출했고 그래서 1차로 296품목만이 약효 동등성을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식약청은 시험자료를 제출한 2442품목중 440품목을 시험평가해 이중 67.2%인 296품목에 대해 약효 동등성을 인정했으며 30%에 속하는 132품목은 자료제출 미비로 동등성 판정을 유보했다. 단지 2.7%인 12품목만이 약효가 같지 않다는 것이 식약청 자료의 결론이었다.

기사를 탐독하면서 필자는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마련한 약효동등성 시험관련자료를 토대로 한 기사였으나 그 자료 어디에도 국내 약 50%가 약효가 없다고 언급한 부분이 안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기사의 제목은 시험대상 4,649품목 가운데 어째서 절반 가량의 품목이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과 30%에 속한 동등성 판단 유보에만 크게 의미를 부여한 듯하다. 하지만 우리 제약업계로서는 억울하기만 하다. 제약업체에 따라 사정은 각각 다르지만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것이 모두 약효 시험을 통과할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시장성이 없어서 스스로 시험을 포기하거나 시험에 장시간이 소요돼 7월 이전에 시험자료를 제출하지 못한 것도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의약분업이 실시되면 다국적 기업들의 시장공세가 거세질 것으로 예상되는 판국에 이런 기사 제목으로 인해 국산약에 대한 불신과 실망이 가져올 결과가 몹시 우려스럽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여러나라에 수출되고 있는 우리 국산약에 대해 외국의 바이어들이 보일 반응이다.

우리 정부는 타 산업의 수출을 위해 의약품을 희생양으로 삼아 왔을 뿐 아니라 보험약은 물론 일반약에까지 갖가지 명목의 가격통제로 국내 제약산업을 위축시켰다. 사실 우리나라 제약업계는 다른 산업과는 달리 정부의 집중적 육성정책 없이 기업인들의 의지 하나로 이제까지 버텨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국내 시장환경이 극도로 열악했기 때문에 오히려 국제 경쟁력 배양을 통한 생존 차원의 자구 노력을 할 수 있었고 이것이 오늘의 제약수준을 만드는 밑걸음이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물론 과당경쟁과 보험재정을 의식한 보험약가정책으로 일부 업체에 의해서 약효가 떨어지는 의약품이 유통될 수 있었다 해도 대부분의 제약업체들은 우수의약품관리체계에 의거한 시설투자를 통해 양질의 의약품을 생산해 왔다. 나아가 우리 제약기업들은 경직된 가격관리체계, 정부의 정책지원 미흡 등으로 연구개발투자가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경쟁력제고를 위한 노력을 다각적으로 전개해 왔다.

앞으로도 국내 제약업계는 21세기 주력산업으로 각광받을 의약품 산업육성을 위해 경쟁력 없는 제품은 시장에서 과감히 퇴출시키는 것은 물론 업체간 구조조정과 전략적 제휴를 강화해 나갈 생각이다. 국민과 의약계로부터 신뢰받는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제약기업들의 노력에 대해 정부와 언론, 그리고 국민의 애정어린 관심과 지원을 바란다.

2000.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