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이 시대 제약바이오기업의 사명

파이낸셜뉴스 입력 : 2019.10.24 16:41 수정 : 2019.10.24 18:39

최근의 잇단 임상 중단 사례는 신약개발이 얼마나 험난한 길인가를 잘 보여준다. 신약으로 대표되는 제약바이오산업은 10년 이상의 시간과 1조원을 넘나드는 거대 자금이 필요하지만 성공 확률은 극단적으로 낮은 고위험 산업의 전형이다.

기술과 자금으로 무장한 거대 다국적제약사부터 국내 제약바이오기업까지 이런 공식 적용에 예외는 없다. K제약바이오의 시련에 자본시장은 술렁였고, 이 과정에서 산업계의 역량과 신뢰도에 의문이 제기됐다. 약간의 비약을 더해 위기론이 불거졌으나 지금의 상황은 비관론보다 산업의 안정적 도약을 원하는 사회적 열망에 가깝다고 본다.

실제 제약바이오산업은 뜨거운 관심과 기대를 받고 있다. 정부는 미래 한국 경제를 견인해 나갈 차세대 선도산업으로 선언했고, 자본시장에서는 가장 주목받는 분야가 됐다.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조차 변방에 위치했던 제약바이오산업에 대한 세간의 시각 변화는 막연한 기대감이 아니라 실질 성과에 기인한다. 의약품 수출은 10년 연속 15%를 웃도는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고, 신약 기술수출은 지난해에만 5조원 이상의 대규모 실적을 달성했다. 또한 허가장벽이 높은 미국과 유럽 등 선진시장에서 잇달아 의약품 승인을 받고, 현지에 법인과 공장을 설립하는 등 현지화 전략에 속도가 붙고 있다.

보건안보 측면의 역할도 크다. 한국 제약기업들의 분투 덕분에 의약품 자급률은 80%에 육박한다. 기술장벽 탓에 글로벌 제약기업도 거리를 두는 백신의 국산 자급률은 50%에 달한다.

경제성이 한참 떨어지는 각종 필수의약품 개발에도 공을 들이며 안정적 공급에 힘쓰고 있다. 의약품 개발 역량과 함께 제약 주권을 유지하는 또 다른 한축인 생산설비는 세계적 수준에 와있다. 260여곳의 GMP(우수의약품 생산 및 품질관리기준) 공장이 가동되고 있으며 유럽의 EU GMP, 미국 cGMP 기준을 충족하는 제약공장이 확대되고 있다. 스마트 공장도 속속 들어서고 있다.

제약바이오산업은 의약품 개발·생산이 핵심이다 보니 안전성과 유효성을 최고 가치로 삼는다. 건강과 직결되는 이유로 규제가 강하고, 제품의 가격도 공급처가 아닌 국가에서 정한다는 점에서 일반 산업군과 차별화된다. 특정 매머드 기업이 시장을 독식하지 못한다는 점도 주목된다.

제약분야는 기업이 단독으로 모든 치료제를 개발해 내기에는 현존하는 질병의 가짓수가 너무 많다. 특정 기업 한둘이 아닌 산업계 전반과 이와 연계된 인프라의 동반 성숙과 발전이 중요한 이유다.

아직 국내 의약품시장 규모는 20조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20조원 규모의 산업이 의약품을 매개로 5000만 국민의 건강을 책임진다. 단언컨대 제약산업 인프라가 붕괴되면 수입의약품 의존도가 심화돼 국민건강 울타리는 무너진다. 그런 점에서 20조원의 사회적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제약바이오산업에 대한 기대감이 커질수록 사회적 책임과 안정적 성장에 대한 고민도 함께 깊어질 수밖에 없다.

2019년 제약바이오산업은 기로에 서있다. 도태되지 않고 비약적 성장을 이뤄내기 위해선 산업발전을 선도해온 전통 제약기업의 역할이 막중하다.

이들 기업이 혁신과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제약기업이 중심이 되어 바이오벤처와 연구기관, 의료계, 정부, 해외 민·관과의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지향하는 산업생태계 구축에 나서야만 한다. 이것이 이 시대 제약기업의 시대적 사명이다.

원희목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