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벤처기업이 한국인 유전자 지도를 완성했다는 발표가 크게 보도됐다.
유전자란 단백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소프트웨어다. 컴퓨터가 2진법으로 기능하듯이 생명체는 A, G, C, T 4개의 코드를 이용해 유전자를 구성하고 여러가지 단백질을 만든다. 화학적으로는 이 4개의 코드를 '염기' 라 부르고 이들이 연결돼 있는 것을 DNA라 한다.
단백질은 생명의 거의 모든 기본현상에 관여하는 중요한 물질이다. 예를 들면 에너지를 생산하는 데 관여하고, 각종 생리현상을 조절하며, 정신과 행동에 대한 생화학적 근거도 제공한다.
지놈(genome) 이란 유전자의 총집합체란 의미로 A, G, C, T 4개의 염기가 여러 가지 조합으로 연결된 난수표와 같은 것이다.
생명체의 모든 세포에는 '염색체' 라 불리는 물질이 있다. 이는 특정 시약으로 염색이 잘 된다 해서 붙은 이름인데 유전자는 이 염색체에 있다.
인간은 수조(兆) 개의 세포로 구성돼 있는데 세포마다 22쌍의 일반염색체와 1쌍의 성(性) 염색체(여자는 XX, 남자는 XY) 로 구성되므로 모두 46개의 염색체가 있다.
염색체는 크기에 따라 1번부터 22번까지 번호를 붙였고 성(性) 을 결정하는 것은 X 혹은 Y라 이름지었다. 번호마다 1쌍, 즉 2개의 염색체가 있는데 이들은 각각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온 것이다.
같은 번호를 가진 염색체, 예를 들어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받은 3번 염색체 각각은 염기배열 순서가 거의 같아 인간유전정보의 윤곽을 잡을 때 두개를 모두 분석할 필요는 없었다.
우리 몸에서 염색체가 23쌍이 아니라 그 반(半) 인 23개가 있는 유일한 세포가 정자 혹은 난자인데 정자는 난자보다 수가 많고, X와 Y를 모두 가지므로 인간지놈 전체를 해독할 때 주로 정자로부터 DNA를 모아 사용하는 것이다.
X, Y를 포함한 23개 염색체에 배열된 A, G, C, T 염기의 총수는 약 30억개가 된다.
인간의 유전자 소프트웨어가 같다면 우리의 모습.행동.생리현상이 모두 같아야 할 텐데 왜 인간들은 차이가 있을까. 30억개의 염기는 일정한 순서로 배열돼 있는데 서로 다른 사람 간에 그 순서가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고 0.1% 정도의 차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30억개 중 약 3백만개(혹은 1천개 염기 중 1개) 정도가 사람 간에 서로 다른데 그 차이를 SNP라 부른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게서는 특정 유전자 부분의 순서가 …A A G C T C A G T T T G G…인데 다른 사람에서는 네번째의 C가 G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 0.1%의 차이로 인해 어떤 사람은 담배를 피워도 90세까지 건강하게 살고, 어떤 이는 30대라는 젊은 나이에 암에 걸리는 현상이 벌어진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번 발표로 일반인들은 마치 한국인 고유의 유전자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예를 들어 한국인과 미국인의 염기배열 간의 차이도 0.1%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따라서 개개인에 약간의 차이(SNP) 는 있겠지만 한국인에게서 미국인에게는 없는 새로운 유전자가 발견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 개인의 유전자 서열을 결정하기보다는 특정 유전자 수백 개를 대상으로 수만명의 한국인 SNP를 조사하는 것이 더 의미있는 작업이 아닐까 생각한다.
金 善 榮 <서울대 교수.유전공학>
▶ 약력
서울대학교 학사,MIT 하버드대학교 석사,
옥스퍼드대 유전공학으로 박사학위.MIT Postdoctoral.
하버드대학교 조교수.
현재 서울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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