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약의 날 기념포럼>

의약품의 가치(The Value of Medicines)

신 현택 교수
숙명여자대학교 약학대학


당신은 의약품의 가치를 어떻게 계산할 것인가? 다음 세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할 것이다.

질문 1: 당신은 의약품으로 인해 생명이 연장되는 햇수를 세고 있는가?
질문 2: 당신은 의약품이 사람으로 하여금 일하게 만들거나 독립적으로 삶을 영위하거나 인생을 좀 더 즐기게 만든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가?
질문 3: 당신은 의약품이 환자로 하여금 수술 또는 병원입원 등을 피할 수 있게 할 때 절약되는 비용을 계산하고 있는가?

이상 세 가지 질문에 답하노라면 바로 의약품의 가치를 새삼 느끼게 될 것이다.

어느 면으로 보나 보건의료에서의 의약품은 가장 훌륭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의약품은 생명을 구하고 고통을 완화시키며 질병을 치료 또는 예방한다. 의약품은 환자들이 좀 더 오랫동안 가족과 함께 삶을 영위토록 하며 또한 삶의 질을 높인다. 의약품은 사회에서 직장인들이 건강하게 일하도록 도와주어 생산성을 높인다. 그리고 환자들로 하여금 수술, 입원 등을 피할 수 있게 도와주며 이로 인해 질병을 관리하는데 드는 전체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1977년 위궤양 치료를 위한 신약(H2-blocker)이 나오기 전만해도 미국에서는 연간 97,000명이 궤양치료 수술을 받았다. 이후 1987년까지 위궤양 수술은 연간 19,000건으로 줄었으며 1990년대에 이르러 위궤양 수술비는 건당 28,000불인 반면 일인당 연간 약물치료비용은 불과 900불에 이르게 되었다. 더 나아가 위궤양의 주원인이 H. pylori로 밝혀지고 이에 따라 개발된 새로운 약물치료법인 항생제와 H2-blocker의 병용투여는 대부분의 위궤양을 근본적으로 치료하게 되었다. 이 새로운 치료법은 미국의 경우, 적어도 연간 2억불이상의 의료비를 절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신의약품의 개발과 새로운 치료법의 진화는 국경을 초월하여 전 세계인에 전파되고 있으며 인류가 질병과 싸워 이기는 데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고 있다.

신약의 등장은 생명을 구급하는 데 기여할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체적으로 신의약품이 사회에 주는 이익은 약물치료에 드는 비용을 크게 앞지른다. 신약의 등장은 생명을 연장시키며 고비용의 수술 및 입원치료를 대체시킬 뿐만 아니라 직장인으로 하여금 일을 할 수 있게 하고 삶의 질을 높인다. 이러한 신의약품의 사회경제학적 가치는 많은 연구결과에 의해 충분히 증명되고 있다. 또한 이러한 간접효과를 직접 돈으로 환산하면 고비용 약가에도 불구하고 매우 큰 이익을 사회에 환원한다. 따라서 신약의 창출을 저해하는 정책은 사회로부터 이러한 신약의 사회적 이익을 빼앗는 결과를 초래한다.

아직도 우리 인류는 많은 질병과 힘겨운 투쟁을 하고 있다. 암은 완전히 정복되지 않고 있으며 에이즈, SARS 등 새로운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지속되고 있다. 또한 미래에도 새로운 형태의 질병과 가공할 바이러스가 출현하여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존재한다.

인류의 건강한 생존을 위해 생명연장을 위한 도전과 질병과의 투쟁은 지속되어야 한다. 새로운 질병과의 투쟁에 필요한 혁신적 신의약품의 개발에는 많은 비용과 노력, 그리고 시간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도전은 누가 책임질 것이며 그 결실은 누가 향유할 것인가? 이제 우리 모두가 책임져야 하며 또한 그 결실도 우리 모두가 향유할 것이다.

혁신적 신의약품이 창출되도록 기초과학연구(basic biomedical research)에 대한 투자가 지속되어야 하며 지적 소유권(intellectual property)의 보호가 강화되어야 한다. 또한 신약이 보다 신속히 검증될 수 있도록 효율적 허가관리 시스템(efficient regulatory system)이 유지되어야 하며 비용효과적인 방법으로 질적인 진료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시장기반시스템(market-based system)이 구축되어 경쟁과 혁신이 살아 숨쉬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 신의약품의 약가만을 바라보는 좁은 식견을 버리고 신의약품의 사회적 가치를 바라보는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신의약품의 사회적 가치는 매우 크나 또한 부정적인 결과를 낳기도 한다. 의약품의 적절한 활용은 생명을 구할 수 있으나 잘못된 사용은 오히려 생명을 위협할 수 있으며 큰 사회적 손실을 초래한다. 따라서 신의약품의 창출을 위한 노력과 함께 약으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현재도 많은 사람이 의약품으로 인해 생명을 건지고 있지만 많은 환자들이 약화사고로 사망하고 있다.

약화사고에 의한 사망은 미국의 경우, 네 번째로 많은 사망원인으로 꼽히고 있으며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매년 1,360억불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그동안 숨겨져 왔던 약물사용의 안전성(medication safety) 문제는 이제 발등의 불로 인식되었으며 이에 대한 특별 대책이 강구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비록 약물사용의 적정화를 위한 의약분업제도가 실시되고는 있으나 아직 그 효과가 구체화되지 않고 있으며 약물사용의 안전성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따라서 의약분업의 올바른 정착과 약물사용의 부정적 요소가 제거되지 않고서는 의약품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며 그 결과, 제약기업에 대한 약가보상이 어렵게 되어 혁신적 신의약품 개발에 대한 투자는 더욱 어렵게 될 것이다.

향후 생물공학(biotechnology) 응용산업이 국가미래를 좌우한다고 하며 그 첫째 생산물은 신의약품이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국가장래를 위해 이 분야에 대한 도전을 포기할 수 없으며 따라서 제약기업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신의약품 개발에 대한 투자를 강화해야 한다. 그러나 제약기업의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비효율적이며 불합리한 의약품 유통구조와 낭비적 요소는 아직도 제거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후진적 의약품 유통 및 소비행태를 개선하지 않으면 국내 제약기업은 경쟁력을 잃게 되며 신의약품 개발에 대한 투자의지를 상실할 것이다. 더 나아가 국내 제약기업의 약화는 국가 국민보건에 매우 중요한 물적 자원인 의약자원의 안정적 확보에도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의약품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해야 하며 적정소비를 통한 사회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이러한 사회적 이익에 대한 경제적 보상이 제약기업으로 돌아가 인류의 미래를 위한 신의약품 창출에 재투자될 수 있도록 정책적 전략수립과 제도개선이 우리나라는 물론 국경을 초월하여 이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