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만큼 창의성 짙고, 희망적인 용어가 세상에 또 있을까? 미래를 보장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으로 통용되는 이 말에 뉘라서 토를 달 수 있을까. R&D는 기업의 미래를 지켜줄 씨앗으로 산업계에서 지지를 받는다. R&D를 하는 곳이나 않는 곳이나 그 필요성을 늘 강조한다. 이익이 남아돌아 R&D를 하는 게 아니라, 이익이 바닥을쳐도 해야만 하는 것으로 기업들은 R&D의 중요성을 받아들인다. 학생이면 공부를 해야하는 것처럼 말이다. 특히 제대로 한번만 성공하면 그야말로 대박을 칠 수 있는 신약개발 분야에서 R&D의 중요성은 새삼스레 거론할 여지조차 없다. 내일의 성공을 꿈꾸는가? 그러면 R&D를 하라는 진리를 한미약품이 최근 멋지게 입증시켰다. 연구개발엔 관중을 깜짝 놀라게 할 반전의 매력이 숨어있다.

하지만 신약개발을 목표로 한 제약기업들의 R&D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R&D 개념과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일반인들의 머릿 속에 그려진 R&D란 흰색 가운을 입은 연구원들이 연구실에 앉아 현미경을 들여다 보는 장면과 여기서 얻은 결과물로 곧 신약을 만들어 약국 진열대에 올려 놓는 장면일지 모른다. 한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굳이 R&D를 인수분해해보면 'Research and Developement'가 된다. 일반인들은 'Research'를 R&D의 모든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짙다. 일반인들만 그런 것도 아니다. 신약은 고부가가치 대박으로 생각해 제약산업에 손발을 뻗친 재벌기업들도 그랬다. 얼마간 R&D는 플레밍이 푸른곰팡이(나중 페니실린으로 발전)를 발견하듯 곧 선물을 안겨 줄 것으로 기대했던 듯하다. 돈과 시간은 무한정인데, 결과물은 신통치 않자 그들은 잽싸게 방향을 틀었다.

대체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지는 것일까? 'D'를 간과한 탓이리라. 1987년 물질특허제도가 도입되고 신약개발의 중요성이 강조되던 때 일간신문엔 '기존 암치료제보다 몇배 높은 효과를 보이는 신물질을 찾아냈다'는 따위의 보도가 흥행했다. 한데 그 많던 보도의 결과물들은 지금 어디로 간 것일까. 신약 연구의 본론편이라할 수 있는 개발(Developement)이 얼마나 험난한지 알지 못했던 탓이다. 통상 신약개발 연구자들은 하나의 신약이 개발될 때 투자금액과 시간의 비중을 나눠보면 연구(리서치)는 20%, 개발은 80% 쯤된다고 말한다. 대개 동물실험까지를 연구, 임상시험부터 다시말해 상품화 단계를 개발로 분류한다. 질병치료 가능성이 있는 신물질을 발견해 20년 특허를 보장받았다쳐도 10년 이상 개발 단계서 소진한다. 돈과 비용이 많이 드는 임상시험을 거쳐 허가당국의 최종 승인을 받기전까지 그것은 하나의 가능성에 불과하며, 승인을 받아 의사가 처방전에 쓸때라야 비로소 진정한 약으로 태어나게 된다.

한미약품이 지난해 모두 4건, 8조원 가량 기술수출을 잇따라 성공시키면서 신약개발의 가치와 국가 신성장동력으로서 가능성이 뜨겁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정부는 어느 때보다 가능성에 솔깃해하며 산업계를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지 귀를 활짝 여는 모양새다. 진실로 도움을 주고자한다면, 그 분야는 무궁무진할 것이다. 혁신 신약 개발의 원점이 될 수 있는 약물 타깃 발굴 등 기초연구는 물론 오픈 이노베이션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생태계 조성, 기업이 R&D 투자에 나서도록하는 보험약가정책 개선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다만 이 글의 맥락상 개발부분의 정부지원을 이야기한다면 임상시험 투자비용의 세액공제가 있을 것이다. 신성장산업의 젖줄이되는 조세특례제한법을 적용하면 전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단지, 신약 연구개발(R&D)의 특성을 인정해 주면되는 것이고, 이는 산업육성을 꾀하는 정부당국의 철학에 관한 문제다.

지난 20일 주형환 산자부 장관이 한미약품연구센터를 방문해 제약바이오산업계로부터 의견을 청취할 때 임성기 회장이 건의한 내용도 같은 맥락에 있는 문제다. 이 자리에서 임 회장은 "임상시험용 의약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지을 때 이를 R&D 투자로 인정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른 세액공제 필요성을 주장한 것인데, 실은 산자부와 상관없는 사안이었다. 기재부 소관인줄 알면서도 간곡히 요청한 것은 그 만큼 제약바이오업계가 상품화를 위한 개발단계서 지원이 절실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임상시험용 의약품 생산공장은 신약개발에 성공했을 때 완제품 공장으로 용도 전환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그게 R&D일까'하는 의구심을 만들지만, 엄연히 상품화 이전까지를 R&D로 보는 만큼 근거불충분한 주장은 아니다.

동일 선상의 문제는 또 있다. 올 3월 17일부터 임상시험에 부가세를 붙이는 문제다. 임상시험을 수탁받은 병원에게 부가세 10%를 내도록하겠다는 것인데, R&D 범주에 포함될 뿐만 아니라 신약개발 과정의 꽃인 임상시험에 과연 부가세를 책정하는게 정당한지 의문이 든다. 그동안 병원과 대부분의 의뢰자인 제약회사와 힘의 역학관계를 고려할 때 부가세 10%를 상쇄할 임상시험 단가 상승은 유력해 보인다. 사실상 제약산업계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한미약품의 기술수출을 들여다보면 정부의 세액공제는 사실상 남는 투자일 수 있다. 정확히 계산을 해낼 수는 없으나 8조원 계약을 모두 성공시킬 경우 세액공제보다 한미약품이 이 나라에 낼 세금은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된다. 이게 국부 창출이다. 일련의 국부창출을 선순환시키려면, 신약 관련 R&D의 세액공제는 한층 더 확대될 필요가 있다. 미래 예측과 정책 철학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