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 [기고] 2001/03/08

국민보건의 자주성을 확보하고 국민의료비 부담의 적정성을 유지하려면 제약산업의 발전이 중요하다. 우리나라 제약산업은 지난 60년대 의약품 국산화를 시작한지 40년 만에 세계 11위권으로 성장했고 이제 개량신약, 신물질신약, 나아가 바이오 신약을 개발하는 제약 선진국의 문턱을 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국적(國籍) 제약산업의 국내외 경영환경이 비호의적으로 급변하고 있어 특단의 경쟁력 강화전략이 요구된다.

의약품은 인간의 생명과 건강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의약품의 안전성과 유효성이 특히 강조되고 관련 제도와 규제가 많다. 또 질병의 양태와 원인이 다양한 만큼 의약품의 생산구조와 소비구조가 복잡하다. 진료ㆍ처방행위가 의료인에게, 조제ㆍ투약행위가 약사에게 면허돼 있기 때문에 중간 수요의 비중이 크고 시장이 제품별로 세분화돼 있으며 유통체계가 복잡하다.

그리고 의약품은 개발ㆍ생산과정에 첨단기술이 집약되기 때문에 기술우위에 따른 기업의 독점력이 강한 반면 대체가능한 의약품으로서 유효성이 낮은 의약품은 쉽게 시장에서 퇴출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국내에서 의약품을 생산ㆍ공급하는 610개 기업(생산실적이 있는 곳은 519개)의 총 생산규모는 약 7조5,000억원(99년)으로 국내총생산의 1.7%를 차지한다. 대부분의 국적 제약기업들은 아직 복사의약품이나 개량신약을 생산하는 수준이라서 국내시장에 진입하고 있는 대규모 외자기업들에 대한 경쟁력이 매우 취약하다.

더구나 선진국 제약기업들은 지난 90년대 중반부터 기술이전을 기피한 채 국내 의약품시장을 직접 공략, 국적 제약기업들을 생존위기로 내몰고 있다. 31개 외자 제약기업의 국내시장 점유율은 순매출액 기준 25%(99년)나 된다.

여기에 의약분업제도ㆍ의약품실거래가상환제 등 약사제도의 변화가 의약품 수준 감소, 의약품 가격 인하와 같은 의약품시장의 축소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복사의약품의 퇴출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에 영세한 제약기업들의 존립기반이 와해되고 있다. 국적 제약업체 대부분이 이처럼 비호의적인 경영환경에 처하게 됨에 따라 적절한 대응전략이 요구된다.

첫째 자율구조조정을 통해 대규모 선도기업, 생산전문 중소기업과 연구개발전문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

품목거래나 분사를 통해 핵심영역(특정 브랜드)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상대적 비교우위 영역이 다른 제약업체와의 전략적 제휴, 생물의약품 개발을 위주로 하는 기술집약형 벤처기업과의 기술제휴를 활발히 추진하는 전략이 요구된다.

둘째 독자브랜드 제품을 가졌거나 신약 개발과정에 있는 대형 제약업체는 외자기업과 전략적 제휴를 통해 세계시장 공략을 강화한다.

단순 복사의약품이나 수요가 적은 저가의약품을 생산해온 중소 제약기업들은 특정의약품만 취급하거나 건강식품(또는 한약제제) 생산업체로 전환하는 방안을 강구한다.

셋째 제네릭 의약품 생산 위주의 중규모 제약기업들은 특정의약품 전문생산업체로 특화한다.

대형 외자기업의 국내시장 진입과 약사제도 변화는 의약품 소비를 감소시키고 국적 제약기업의 경쟁력과 시장점유율을 위축시킬 것이다. 대형 제약기업은 성장하고 중소업체는 소멸하는 영향도 받을 것이다.

우리나라 의약품시장이 국민보건에 도움이 되도록 건실하게 작동하려면 국적 제약기업을 유지ㆍ육성할 필요가 있다. 국적 제약기업이 의약품시장을 어느 정도 점유하고 있어야만 의약품 가격이 국민의 부담능력에 의해 통제되기 때문이다.

만약 국내 의약품시장이 외자기업들만의 각축장으로 변화되면 의약품 가격의 상승 수준이 국민의 부담능력을 벗어날 우려가 있다.

국적 제약기업으로서 세계 100대기업 수준 이상의 제약기업을 창출하고 중소제약기업을 효율적인 생산기업으로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 의약분업을 운용하는 의사ㆍ약사들이 가급적이면 국산 의약품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약가제도의 개선과 의약품유통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우리나라의 국적 제약기업이 싸고 좋은 의약품을 생산ㆍ공급하도록 도와야 한다.

그래야 의료기관(인)과 약국들이 국민보건을 위해 소신껏 의료약사들도 가급적 국산 의약품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이 같은 노력이 합쳐진다면 세계 100대 기업 수준 이상의 국적 제약업체의 창출도 꿈이 아닐 것이다.

/정두채(한국보건산업진흥원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