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별등재제도, 국민 파급효과 감안 신중히 추진해야

<이글은 9월 22일(금) 한겨레신문에 실린 정성수 국민건강보험공단 서울지역본부장의 기고문 '건강보험약제비 적정화를 위해'와 관련한 우리협회 김용정 유통약가팀장의 반론문입니다>.


지난 9월 22일(금) 한겨레신문에 실린 정성수 국민건강보험공단 서울지역본부장의 ‘건강보험 약제비 적정화를 위해’를 읽고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 반론을 제기한다.

첫째, 우리나라 약제비 비중이 높고 증가율이 가파르다는 주장에 수긍할 수 없다. ‘OECD 헬스 데이터 2006’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총 의료비 중 약제비 비중은 2003년 27.6%에서 2004년 27.4%로 오히려 0.2% 포인트 줄어들었다. 또한 ‘의료비 대비 약제비 비중’만을 보고 약제비 비중이 높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분모에 해당하는 총 의료비는 GDP의 5.6%로 OECD 국가 최하위 수준인 반면, 분자에 해당하는 약제비에는 3조 1000억원에 상당하는 한방첩약과 기타의료소모품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OECD 통계를 직접 작성하고 국내자료를 보고하는 연세대학교 정형선 교수와 이규식 교수도 ‘총 의료비중 약제비 비중’을 약제비의 높고 낮음을 평가하는 지표로 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약제비 비중은 오히려 1인당 소득수준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통계적인 접근일 것이다. OECD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1인당 GDP대비 약제비는 1.5%로 OECD 국가 평균 수준이다.

둘째, 신약을 앞세운 미국의 공세를 막아내고 국민의 과도한 약가부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포지티브 리스트(보험의약품 선별등재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에 선뜻 찬성할 수 없다. 의약품 선별등재에 따른 보장성 축소로 오히려 국민의 의약품 접근성은 제한되고 환자의 비용부담은 더욱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아직 비용 효과적인 의약품을 선별할 수 있는 전문가도 데이터도 기준도 절대 부족한 게 현실이다. 이를 감안하면 선별등재제도 도입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사안이다.

선별등제제도는 제약산업 선진화 측면에서도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 제도는 신규 의약품 등재시 진입장벽을 높이고 시장 예측력을 떨어뜨려 기업의 신약개발 의지를 무력화시킬 것이다.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제약 강국들은 선별등재제도가 아닌 포괄등재제도(네가티브 리스트)를 채택하여 새로운 의약품이 지속 연구 개발 생산될 수 있는 산업 발전 기반을 조성해주고 있다.

셋째, 약제비 적정화를 위해 보험자의 협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의견을 달리한다. 보험자의 협상력 강화란 의약품의 보험등재 권한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가격 결정권은 건강보험공단이 갖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국가가 주도하는 단일 시장이다. 이를 감안할 때, 수요 독점적 위치에 있는 평가원과 공단은 제약기업의 생사를 가름 하는 무소불위의 힘과 권한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비용대비 약효가 뛰어난 의약품이 시장(의사)이 아닌 정부(심평원, 공단)에 의해 선택되는 상황에서 투명한 유통과 공정한 경쟁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넷째, 건강보험 약제비 적정화를 위해 선별등재제도, 보험자 협상력 강화, 제약산업 선진화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은 비현실적이라는 점이다. 위에서 지적했듯, 선별등재제도 및 보험자의 협상력 강화 정책은 제약산업 선진화 정책과 서로 대립적인 요소를 안고 있어 양립하기 힘들다. 한미 FTA로 위기에 몰린 제약업계는 위의 두 가지 정책으로 막다른 궁지로 몰리고 있는 형국이다.